이십년 전 원주에 이사 와서 처음 살게 된 동네가 학성동이다. 당시 원주에 연고가 없던 터라 동네에 대한 사전지식이 전혀 없었고, 전세 구하기가 하늘에 별 따기라 집이 나왔다하면 무조건 계약금부터 부쳐야했다. 그렇게 무대뽀로 이사 간 곳이지만 집 가까이에 초등학교가 있고 법원도 있고 시청도 걸어 갈 만큼 가깝고 나름 만족스런 동네였다.
 

 그런데 낮의 학성동과 밤의 학성동은 너무 달랐다. 어스름 해질녁 동네산책을 나가보면 버스가 지나다니는 큰길가부터 40계단이라 불리는 동네 안쪽까지 빨간 홍등을 켜고 유리방속에 여성들이 앉아있었다. 눈을 둘 곳 없어 황망히 집으로 도망쳐 온 후 밤에는 그쪽으로 차마 가질 못했다.
 

 알고 보니 이곳은 6.25전쟁이후 당시번화가였던 학성동에 조성된 희매촌이라 불리는 오래된 성매매집결지였다. 그렇더라도 성매매가 불법인 나라에서 지방법원 옆에서 버젓이 성매매 업소가 운영된다는 사실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더구나 바로 근방엔 오래된 초등학교가 있었고 매일 아이들은 그 곳을 지나 학교로 등·하교를 하고 있었다.
 

 이건 아니다 싶어서 성매매집결지를 없애기 위한 활동을 했지만 정말 쉽지 않았다. 상담소 활동을 하며 밤에 경찰들과 함께 나가보면 아직 앳된 얼굴의 여성들이 적대감을 드러냈고, 업주들은 장사를 방해한다고 화를 내기 일쑤였다. 저 멀리 유리벽으로 가로막혀 있는 그녀들의 탈 성매매를 돕겠다는 것은 그저 여성단체의 의지일 뿐이었다. 2004년 성매매처벌법이 만들어지고 전국의 성매매집결지가 줄어가는 중에도 원주의 희매촌은 굳건했다.
 

 성매매예방교육을 하고, 집결지 폐쇄 운동을 하고, 그곳에서 일하는 여성에 대한 사회적 관심과 지원을 주장했지만 내가 바꿀 수 있는 것은 없었다. 지금까지도 희매촌은 내게 아픈 손가락으로 남아있다. 그래서 의원이 되어 처음 짚었던 문제도 강원도에 남아있는 성매매 집결지에 대한 강원도의 대책이었다.
 

 그랬던 학성동이 이제 바뀌게 된단다. 2018년 정부의 도시재생사업지로 학성동이 선정되면서 원주시는 희매촌에 대한 대대적인 정비를 계획하고 있다. 다행히 학성동 일대는 도시재개발이 아닌 도시재생을 준비 중이다. 과거의 도시 재개발은 지역의 역사, 주민들의 삶의 흔적들을 불도저로 밀어버리고 완전히 다른 신도시를 건설하는 반문화적이고 반역사적인 방식이었다. 그 결과 원주민의 생활환경은 악화되고 '둥지 내몰림' 현상이 나타나게 되었다.
 

 도시재생은 구도심과 노후 주거지를 대상으로 쇠퇴한 지역의 여러가지 문제를 해결하고 주민들의 삶의 질을 개선하는 정책이다. 인구 감소, 산업구조 변화, 주거 환경 노후화 등 낙후된 구시가지에 새로운 기능을 부여해 경제적·사회적·물리적·환경적으로 활성화시켜 쇠퇴한 구도심에 생명을 불어넣는 사업이다. 결국, 도시재생의 핵심은 낙후된 지역을 되살려 지역 정체성 강화하고 공동체를 회복하는데 있다.
 

 내가 생각하는 학성동 도시재생의 과제는 첫째, 학성동의 역사와 문화를 보존해야 한다. 둘째, 거기 살고 있는 원주민 중심의 기반시설 확충을 통해 시민의 삶의 질을 높여야 한다. 셋째, 그 과정에 주민들이 주도적으로 참여하여야 한다. 넷째, 여기에 행정기관과 전문가가 서로 협력해 지역 활성화를 도모하는 거버넌스의 모델을 만들어야 한다.
 

 이제 나는 희매촌이 있던 학성동이 아픈손가락이 아닌 아름다운 도시재생의 모델이 되길 꿈꾼다. 시와 시민의 노력으로 인생의 막장으로 몰렸던 여성들이 새로운 삶을 찾고 자기 이름을 찾아가는 시작점이 되길 꿈꾼다.
 

 그리고 원주의 도시재생사업이 학성동을 넘어서 중앙시장, 아카데미극장, 남산, 봉산동까지 이어져 구도심이 기피지역이 아닌 원주의 역사가 살아 숨쉬고 사람들의 이야기가 넘치는 명소가 되길 기대해본다. 지금은 성과가 아닌 사람을 볼 때이다. 도시재생 사람과 지역에 대한 깊은 성찰과 고민의 결과여야 한다.

정유선 강원도의원  wonjutoday@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