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 답사로 역사와 친해지는 방법을 시민에게 알려준 사람이 있다. 강범희(63) 강원인문학연구소장은 원주에서 처음으로 지역문화재 답사 프로그램을 운영한 것은 물론 문화재해설사 양성에 누구보다 앞장선 사람이다.
 

 횡성이 고향인 강 소장의 3남매는 동네에서 꽤 유명한 수재였다. 형이 횡성 최초의 서울대생이었고, 누나는 횡성 최초의 여대생이었다. 당시만 해도 대학 진학률이 워낙 낮았기 때문에 당연히 동네 자랑거리였다. 강 소장도 중학교 때까지만 해도 1등을 놓치지 않는 엘리트였다. 하지만 사춘기가 되면서 모범생 울타리를 벗어났다.

 가출을 해 세상 밖으로 나왔고, 서울에서 안 해 본 일 없이 닥치는 대로 했다. 그러다 대학을 가기위해 검정고시를 치르고 강원대학교에 입학했다. 또래 친구보다 3년이나 늦은 입학이었지만 누구보다 열정적인 대학 생활을 했다. 대학 졸업 후 역사 전공을 살려 국사 교사가 됐다.
 

 선생님으로서 강 소장의 원칙은 '차별하지 않는다. 새학기 시작하고 2개월 안에 가르치는 모든 반의 아이들 이름을 외운다'였다. 교사로 생활하는 내내 한 번도 어기지 않은 자신과의 약속이었다. 강 소장은 흔히 말하는 비행청소년이라는 곱지 않은 시선을 받는 당사자가 돼 봤기에 누구보다 학생들 마음을 잘 이해해 유난히 따르는 제자가 많았다.

 A 고등학교 재직시절 대학진학률이 1명에 불과했던 것을 2년 만에 9명으로 늘렸고 B 중학교에서는 담배 피우는 학생이 많아 골치였던 문제를 단번에 해결했다. 스승의 날이 되면 강 소장의 책상에는 꽃과 선물이 산더미처럼 쌓였고 어디서나 인기 1위였다. 그렇게 평범한 교사 생활을 하다 교통사고로 죽을 고비를 넘긴 뒤 '사람답게 사는 것'에 대한 고민을 했다.

 그래서 시작한 것이 봉사였다. 원주YWCA에서 밤에 운영하는 청소년 상담 전화 상담을 하다 사회복지시설 어린이들과 할 새로운 프로그램을 고민하는 것을 보고 문화재 답사를 제안했다.
 

 "원주에서 문화재답사 프로그램을 시작한 것은 처음일 것이다. 학생뿐 아니라 부모들도 좋아했다. 그러다 유홍준 씨가 쓴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책이 나오면서 전국적으로 문화재 답사가 붐이 일었다.

 원주시는 물론 곳곳에서 문화재 답사 프로그램 제안이 많이 왔다"고 추억하는 강 소장. 평일에는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주말에는 답사프로그램을 운영하느라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랐다. 그래도 원주시민에게 지역의 문화재를 알려주는 게 너무 신났다. 보다 체계적인 프로그램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어 원주투데이신문사와 원주를 부론·문막·신림·소초 권역으로 나눠 체험과 답사를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각 지역을 다니면서 성황림, 거돈사지, 법천사지, 용소막성당 등을 보고 체험을 하나씩 하는 구성이었는데 시민들 호응도 높았다. "지역에 대한 애정은 제대로 아는데서 부터 출발한다. 답사를 한 번 다녀오면 다음날부터 답사 다녀온 문화재에 대해 물어보는 전화가 많이 왔다"는 강 소장은 이 프로그램이 원주시 시티투어의 모델이 됐다고 설명했다.
 

 문화재 해설사 양성 프로그램도 강 소장의 열정으로 탄생했다. 8년간 문화재청의 도움을 받아 찾아가는 문화유산 해설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강사를 양성했고 강원도 문화관광해설사 교육센터장도 맡아 200여명의 교육을 책임지기도 했다. 원주의 문화재에 대한 정보를 담은 '남한강 물결을 따라서1,2'는 물론 학생들을 지도했던 경력을 살려 사물 인터넷과 가상현실에 관한 책도 출판했다. 올해는 불교, 유교, 왕릉의 문화재 답사 내용을 담은 책을 쓰고 있는데 곧 독자들을 만날 수 있을 것 같다.
 

 지역 역사의 기록에 대한 관심이 많다 보니 국가기록원에서 민간기록물을 발굴하는 민간기록조사위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홍천에서는 떨어져 있는 애인에게 월남전에서 있었던 일을 적어서 보냈던 편지와 단계동 홍승춘 씨가 1955년부터 최근까지 농촌봉사활동, 공무원 생활 등을 꼼꼼하게 기록한 일지도 국가기록원에 보존했다. 귀래면에서 50여년 간 하루도 빠짐없이 일기를 쓴 최영숙 씨의 일기장도 강 소장을 통해 국가기록원에 영구 보존됐다.
 

 6년 전 교직을 그만 둔 뒤에도 강원교육희망재단 초대 이사로 활동하며 강원도 교육 발전을 위한 열정을 쏟고 있는 강 소장은 한 달에 20여권의 책을 읽는 독서광이다. 그는 "역사는 나의 삶이다. 현재와 과거의 끊임없는 대화가 역사인데 항상 그 곳에 머물고 싶다"고 말했다.
 

서연남 시민기자  wonjutoday@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