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위가 한풀 꺾였고 또 다른 계절의 문턱에 와 있다. 평소에도 많은 사람들이 즐겨 찾는 치악산 구룡계곡 금강소나무 숲을 찾는 이들이 많지만 지난여름 더위를 피해 찾은 이들이 더 많았을 것 같다. 
 

 쭉쭉 뻗은 금강송 길을 걷다 보면 전나무 숲 사이로 수형이 아름다운 은행나무가 있고 그 뒤로 천년고찰 구룡사의 건물들이 자태를 드러낸다. 이전에 비해 사찰경내가 깨끗하게 잘 정비되어 있어 찾는 이들에게 안정감을 준다. 그런데 사찰을 찾은 이들 가운데 이 절의 대웅전 지붕에 있는 청자 와당과 잡상들이 있음을 눈여겨 본 이가 많지 않았을 것 같다.
 

 절의 건물들이 경사가 급한 터에 자리를 잡다보니 구조상 한눈에 건물을 살피기 어려운 점도 한 몫 했을 것이다. 사천왕문 뒤로 이어진 경사가 급한 계단과 그 좌우로 길게 늘어선 담장들이 더욱 사찰 건물의 조망을 방해한다. 보광루 밑을 지나 몇 개의 돌계단을 오르면 만나게 되는 대웅전! 이 건물도 가슴 높이의 석축 위에 있다 보니 건물 정면 문들이 얼굴 바로 앞에 놓여진 구조로 지붕 위의 청자와당과 잡상을 보기란 쉽지 않다.
 

 구룡사에 이렇게 잡상과 청자와당이 설치되어 있지만 우리나라 한옥 건물에서 잡상과 청자와당은 평범한 설치가 아니다. 이 둘은 궁궐과 사찰 등 권위와 장엄을 필요로 하는 건축물에 사용된다. 한편으로는 건물을 수호하는 의미를 담고 있어, 멀리서도 특별한 격식을 지닌 건물임을 쉽게 알 수 있도록 꾸며졌다.
 

 이렇게 건물에 잡상을 꾸미게 된 유래는 당태종의 꿈속에 기와를 던지며 괴롭히는 귀신들이 자주 나오자 신하들이 『서유기』속의  삼장법사와 그의 제자들이 천축 국으로 가는 과정에 잡귀들을 물리치는 상황을 건물에 그대로 반영하여 잡귀로부터 수호의 의미와 권위를 부여했다고 한다. 잡상의 형태도 『서유기』의 등장자 또는 중국 토신의 이름들로 구성되어 있다. 보통 4개에서 11개까지 설치하고 건물의 권위에 따라 그 수량도 달랐다고 한다.
 

 궁궐의 전각인 정전과 왕과 왕비의 침전, 경회루와 같은 격식을 갖춘 누각 건물에서 찾아볼 수 있다. 또한 최고 권위의 사당인 종묘 정전, 영녕전, 그리고 도성의 문, 하늘에 제사를 지내던 원구단의 황궁우, 왕릉의 건물에도 잡상이 배치돼 있다. 이렇게 잡상은 유교적 권위를 나타내는 건축뿐만 아니라 왕족의 후원을 받는 사찰의 금당 건물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남양주 흥국사 대웅전, 밀양 표충사 대광전, 파주 보광사 대웅전 잡상이 대표적인 사례다.
 

 구룡사 대웅전의 잡상은 1968년 건물기록 사진에서 찾을 수 있다. 이후 보수정비과정에 사라졌다가 근래 보수하면서 설치되었는데, 대웅전 용마루의 청자 와당도 이때 올려졌다. 우리나라 사찰 지붕에는 잡상의 설치의 예가 흔치 않은 가운데 구룡사 대웅전의 잡상은 처음 설치된 시기와 연원이 주목된다. 지금까지 구룡사 사적기나 원주지역 역사기록 어디에도 구룡사가 왕실과 관련된 기록이 없기 때문이다.
 

 참고로 '잡상'의 다른 명칭은 '어처구니'이다. 이는 목수가 건물을 완성하고 마지막으로 올려놓는 '어처구니'를 깜빡 잊고 올려놓지 않아서 유래된 말이라 한다. 기껏 잘 지어놓고 어처구니를 올리지 않으면 미완성이 되니 사소한 작은 일을 마무리하지 않아 어이가 없다는 의미이다. 또한 어처구니는 맷돌의 손잡이가 유래라는 설도 있다. 맷돌의 손잡이만을 어처구니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궁궐의 잡상도 어처구니라고 부른다.
 

 이제 곧 가을이다. 치악산의 단풍구경을 나서거나 황장목 숲길걷기에 나서는 길에 구룡사의 대웅전 건물에 관심을 가지고 용마루의 청자와당과 4개의 추녀와 합각마루에 설치된 잡상을 보고 사찰의 품격과 의미도 새겨봄직하다. 제일 앞쪽부터 대당사부(大唐師傅) 삼장법사, 손행자(孫行者), 저팔계(猪八戒)로 보이는 잡상과 절의 권위와 품격을 나타낸다는 용마루의 청자와당을 살펴보자. 구룡사 대웅전은 1971년 12월 16일 유형문화재 제24호로 지정되었으나, 2003년 9월 30일 화재로 소실되고 지금의 대웅전은 이후 다시 건축되었다.

이동진 전 원주역사박물관장  wonjutoday@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