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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계혼 숨쉬는 ‘안동 도산서원’

.l승인2004.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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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산서원은 퇴계 이황선생이 생전에 제자를 양성하던 곳으로 돌아가신 4년뒤인 선조7년에 건립되었다.
이 가을, 퇴계의 발자취를 느끼고 삶을 반추해본다. 안동 도산서원은 퇴계의 삶과 학문이 오롯이 깃든 곳이다. 도산서당은 소박하다. 마루와 방, 부엌 3칸으로 구성돼 있다. 평소 제자들을 가르치던 공간이다. 퇴계는 부유하지 않아 서당을 짓는 데 4년이 걸렸다고 한다.
이 단순한 3칸짜리 건물이 퇴계의 삶이 어떠했는지 짐작하게 해준다.
소설가 김훈은 <김훈의 자전거 여행>에서 ‘도산서원의 지붕은 가장 단순한 맞배지붕에 홑처마이다. 검박하지만 가난하지 않고 여유롭지만 넘쳐나지 않는다. 이 단순성은 위대하다’고 했다.
서당 오른쪽 옆에 모자챙처럼 붙은 지붕이 있고 그 아래 평상이 나와 있다. 여기에 얽힌 재미있는 이야기 하나. 퇴계의 제자 정구는 몰려드는 학생들을 수용하기 위해 서당을 증축해야 한다고 건의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자 선생이 외출한 사이에 급우들과 함께 급히 평상을 만들어 마루에 붙였다고 한다. 이 때문에 평상은 정교하지 못하다. 하지만 당시 배움의 열정이 얼마나 강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서당 서편 왼쪽에는 농운정사가 있다. ‘공(工)’자 건물로 건축에서 햇빛이 잘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잘 짓지 않는 형식이다. 그런데 퇴계는 직접 설계도를 그려 이 집을 고집했다. ‘공부(工夫)한다’는 뜻을 담고 있기 때문이었다. 공사 감독을 부탁했던 이문량에게 보낸 편지에 “이 두 칸은 비록 지붕이 아주 낮지만 짧은 처마를 사용하기 때문에 빛을 받아들일 수 있으니 뜰이 좁은들 무슨 지장이 있겠습니까”라고 적었다.
도산서원을 나와 하회로 향한다. 마을은 중앙을 가로지르는 큰길을 중심으로 북촌과 남촌으로 나뉜다. 큰길을 따라 하동고택∼북촌댁∼삼신당∼양진당∼충효당∼류시주가옥∼만송정 순으로 돌아보는 것이 관람코스. 만송정에서 나룻배를 타고 부용대로 건너갈 수도 있다.

하회마을은 걷는 맛이 각별하다. 길은 삼신당을 중심으로 방사선으로 뻗어있는데 대부분 흙담이다. 옛날 하회의 양반들은 느릿한 팔자걸음으로 이 흙길을 따라 이 골목 저 골목을 휘휘 다녔을 것이다.
하회마을을 한눈에 내려다보려면 부용대로 가면 된다. 높이 64m의 절벽이다. 꽃뫼(화산·花山)가 뒤를 받치고 있고 낙동강이 오메가(Ω) 모양으로 크게 휘돌아나가는 모습이 보인다.

부용대를 내려와 서쪽으로 난 솔숲길을 15분여 따라가면 겸암정사에 닿는다. 서애의 형 겸암 류운룡이 세워 제자를 길렀다.
부용대 너머 해가 진다. 낙동강이 붉게 물든다. 떠오르는 퇴계의 시 한수. ‘밤기운 차가워라 창을 기대 앉았자니/두둥실 밝은 달이 매화가지에 오르누나/수다스레 가는 바람 불러오지 않더라도/맑은 향기 저절로 동산에 가득한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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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도산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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