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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부 50년 일기, 역사가 되다

귀래면 최영숙 여사(80) 일기 105점, 국가기록원 영구보존 최다니엘 기자l승인2018.07.09l수정2018.07.09 0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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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영숙 여사와 남편 김긍수 씨. 국가기록원으로부터 받은 감사장을 펼쳐 보이고 있다.

1955년 4월 8일(음력) 맑음 월요일.
오늘은 4월 8일, 옛날부터 전해 내려오는 명절날이다. 날씨는 매우 화창하였다. 밭에 밀보리는 모두 연두색으로 장식되었고 감자 싹도 무성하게 자라났다. 논마다 모자리가 시퍼렇게 변해 농번기 바쁨을 재촉했다. 우리는 오늘 농부 8명을 얻어 모내기를 시작했다. 참으로 행복한 직업이었다. 할머님께서는 어제 절 구경을 가셨다가 오후에 돌아오셨다. 점심밥을 지어먹고 줄을 놓았다.

올해 여든 살이 된 최영숙(1938년생·귀래면 용암1리) 씨가 1955년부터 2006년까지 쓴 일기의 일부다. 부론면 단강리에서 태어나 평생 지역을 떠나지 않은 최 씨는 10대 중반부터 일기를 썼다.(본보 2007년 12월 3일자 보도)

음력 날짜와 날씨를 기록하고, 그 아래 최 씨 개인과 가족, 이웃, 마을 대소사 등을 적었다. 6·25 전쟁 직후부터 2006년까지 하루도 빼놓지 않고 기록했다. 행정안전부 국가기록원은 그 가치를 높이 평가해, 지난달 1일 일기를 기증받아 영구보존 절차를 밟고 있다.

국가기록원 김병남 박사는 "개인 일기임에도 지역 역사를 이해하는데 중요한 자료"라며 "국가기록원 민간기록물 수집자문위원회에서 지난 5월 보존하기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최 씨가 일기를 쓰기로 마음먹은 것은 학업에 대한 미련 때문이었다. 6·25 전쟁 이후 생활고로  중학교 진학이 어려웠다. 정식 교육을 받을 수 없어 일기 작성에 열중했던 것. 초등학교 때 배운 것을 잊지 않기 위해서도 일기는 필요했다.

최 씨는 "한글과 한자로 이름 석 자 정도는 쓸 줄 알아야 어디서도 대접받을 수 있을 것 같았다"며 "배운 것을 잊지 않기 위해 일기를 쓴 것인데 나라에서 인정해주니 기쁘다"고 말했다.

▲ 1955년 작성한 일기의 일부분. 당시 모내기 시작 날짜와 상황이 기록돼 있다.

50년대에는 공책이 귀해 48절지 크기의 '백로지'(일명 갱지)를 잘라 일기장을 만들었다. 파 한 단과 마늘 한 접 가격, 농사철 풍경, 귀래·부론면의 변화상 등을 꼼꼼히 담았다.

집안 살림에 여유가 돌자 공책에 일기를 썼는데 그간 모은 일기책만 105점이나 된다. 남편 김긍수(80) 씨는 "국가기록원에 보존된다고 해서 최근 아내 일기를 다 읽어 봤다"며 "내가 모르던 생활정보도 기록돼 있어 놀라웠다"고 말했다.

귀래면 주민들은 최 씨의 일기가 국가기록원에 보존된다는 결정이 나자 축하 행사를 열었다. 귀래백년독서대학(학장: 김동섭)이 지난 2일 귀래면주민자치센터 도서관에서 '7월 정기 독서강좌 및 최영숙 여사 51년간 쓴 일기 국가기록원 등재 축하 공연'을 개최한 것.

100여 명의 지역 인사가 참석해 축하 인사를 건넸다. 김동섭 학장은 "우리 마을의 변천사가 모두 기록돼 있다니 어떤 내용일지 궁금하다"면서 "심사를 거쳐 합격의 영예를 누리게 됐는데 이는 본인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의 기쁨"이라고 말했다. 귀래면 주민들은 최 씨에게 '일기할머니'라는 애칭을 붙여주었다.


최다니엘 기자  nice4sh@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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