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계 복제 매체로서 영화는 제작과 배급뿐만 아니라 상영을 거쳐야만 온전한 의미를 갖는다. 극장은 관객이 영화와 일차적인 관계를 맺는 곳이다. 극장은 그것이 자리한 지역의 역사를 비롯해 공간의 변천을 반영하는 한편으로 지역민이자 관객의 일상생활과 밀접한 관련을 맺는다. 관객은 '극장가기(cinema-going)' 경험을 통해서 자신의 문화 정체성을 형성하고 재구성한다. 따라서 영화의 역사는 개별 작품을 넘어서 영화의 상영과 관람 경험을 중심으로 기술되어야 한다. 관객은 지역과 도시, 계층 그리고 성별과 섹슈얼리티에 따라서 영화에 대한 다양한 해석과 의미를 부여하는 문화 향유 주체이기 때문이다.
 

 근대 극장의 역사는 서울이 아니라 '지방'으로 불리는 지역에서 시작되었다. 1895년 개항 도시 인천에서 처음으로 협률사(協律社, 현재 애관극장)가 문을 연 이후, 1903년 대한제국의 수도 한성에 단성사가 개관했다. 일제강점기 극장은 오락장을 넘어서 조선인의 공론(公論)을 결집하는 곳이자 다양한 방식으로 생계를 꾸린 조선인의 삶의 터전이었다.

 또한 극장은 근대화와 도시화를 가늠하는 척도로 기능하였다. 해방 이후 한국 영화의 중흥 기간으로 일컫는 1950년대 중후반부터 1960년대 초중반 극장은 흥행을 보장하는 투자처였다. 한 해 평균 150편의 영화가 제작되던 1960년대 중반 전국의 극장은 529개에 달한 것은 이를 증명한다.
 

 원주의 극장 역사는 해방 이후 원주극장과 함께 시작됐으며, 1956년 군에서 운영하는 군인극장이 문을 열었다. 민간인이 운영한 극장은 원주극장과 시공관, 아카데미극장, 문화극장이었다. 이들 극장은 평원로를 중심으로 양쪽에 2개씩 자리하였고 인근의 자유시장과 중앙시장을 오가는 사람들로 인해 항상 붐볐다.

 이들 극장은 극영화를 비롯한 뉴스와 문화영화를 상영하면서 변화하는 세계상을 보여주었고, 영화 이외에 여성국극단과 악극단 공연을 무대에 올려서 전 세대를 아우르는 '문화의 전당'이 되었다. 극장은 단지 연예 오락만 제공하는 공간이 아니었다. 극장은 의연금 모금을 위한 악단 공연을 무대에 올리면서 공익 실현에 기여했으며, 초등학교 졸업식을 거행하거나 시민을 대상으로 '가족노래자랑'을 개최하면서 지역민의 일상과 함께하였다. 
 

 하지만 1990년대 후반 멀티플렉스(multiplex)의 등장으로 이전까지 존재한 단관 극장은 역사 속으로 사라져갔다. 한국 최초의 극장인 애관극장이 멀티플렉스로 바뀌었고, 수도 서울의 단성사는 폐관된 지 오래되었다. 원주 지역 역시 예외는 아니어서 2018년 현재 아카데미극장을 제외한 모든 극장은 그 모습을 찾아볼 수 없다. 1980년대 폐관된 군인극장 자리는 보건소로 바뀌었고 시공관은 주차장으로 변했으며, 원주극장 자리에 중앙우체국이 들어섰고 문화극장마저 몇 해 전 사라졌다.

 단관 극장의 소멸은 개인의 추억을 앗아가는 한편으로 공동체 일원으로서 지역민의 문화적 정체성을 해체하였다. 단관 극장의 사라짐은 단순히 산업의 논리로만 설명할 수 없는 문제이다. 지역 극장은 대중문화의 전파 장소이자 도시 원주의 생성과 변화의 역사를 알리는 산증인이다.

 아카데미극장이 원주에 거주하는 월남민의 이북도민회 연락 사무소로 쓰이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극장은 오락장을 넘어서 전쟁과 분단으로 인한 지역민의 상처를 보듬는 공간이다. 기억은 개인과 공동체가 조화로운 삶을 영위하도록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기억은 기록을 통해 보존되고 살아난다. 다행히 아직 아카데미극장 건물이 남아 있어 희망은 있다. 아카데미극장이 과거의 기억을 바탕으로 일상을 감싸는 대안적 문화공간이 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위경혜 영화학자.국립아시아문화전당 방문연구원  wonjutoday@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