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 받았으니 이젠 되갚아야죠" 

6·25 전쟁이 한창이던 1952년 손이선(84) 옹의 나이는 18살이었다. 그는 고등학교 2학년 때 중퇴하고 전쟁에 참전했다. 당시에는 젊은 혈기에 나라를 구해야 한다는 일념이 강했다.

고향 친구 다섯이 의기를 투합했고 그렇게 자원입대했다. 학교를 중퇴했지만 학도병 신분을 받았다. 주로 정규군 보조 역할을 했는데 전세가 기울 땐 전장 일선에서 총을 잡기도 했다.

주어진 보직은 연락병이었다. 대대와 중대, 중대와 소대를 오가며 중요 문서를 전달했다. 5~6㎞ 정도 되는 산길을 단숨에 내달려 기밀문서를 전달했는데, 임무 수행 중 죽음의 위협을 맞닥뜨린 경우가 허다했다.

손 옹은 "쓰리쿼터(화물차)에 몸을 싣고 소대로 향하는데 폭탄이 트럭 5m 앞에 떨어진 적도 있었다"며 "젊은 혈기로 참전했지만 전장을 경험하니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컸다"고 말했다.

19살의 나이에 경험한 전쟁은 참혹함 그 자체였다. 그는 연락병 임무 외에도 노무자 관리 역할도 맡았다. 탄약이나 식사를 나르던 노무자들이 죽으면 불에 태워 뼈를 빻아 부모에게 보내야 했다.

손 옹은 "시신을 화장하기 전 중대에 잠시 보관했는데 야밤에 들짐승이 훼손하지 않도록 지켜야만 했다"며 "긴 밤 보초를 서면서 두렵기도 하고, 고향생각도 나고, 어머니 생각에 울기도 했다"고 말했다.

유엔군과 중공군, 북한군이 정전협정을 체결하기 한 달 전인 1953년 6월, 1년2개월의 학도병 생활을 마치고 고향에 돌아왔다. 대문 밖에서 아들 목소리가 들리자 어머니는 버선발로 그를 맞이했다.

하지만 해우의 기쁨도 잠시, 입영통지서가 그에게 전해졌다. 당시 학도병은 계급도, 군적도 없는 군인이었기에 입영 영장이 날라온 것이다. 그렇게 4년간 철원에서 나라를 지키며 하사로 군을 제대했다. 제대 후 30여 년 동안은 공무원과 회사원 생활을 했다.

10대와 20대는 강원도 북방 최전선에서, 30~60대는 생계 일선에서 처절한 싸움을 지속했다. 머리에 희끗한 서리가 내린 60대 후반이 되어서야 큰 아들이 있는 원주로 내려왔다.

원주에서도 나라사랑은 멈추지 않았다. 뉴스에서 소방관들이 화재진압으로 순직하는 것을 보고 그들을 돕기로 결심했다. 이웃사랑 모닥불회를 발족해 순직소방관 유가족을 돕는 길에 앞장섰다. 6·25 참전유공자 전우들과 뜻을 모아 성금을 모으기 시작했고 지난해 50만 원을 기탁했다.

그는 "어떤 사람은 '당신네가 도움을 받아야 할 형편인데 젊은 사람들을 왜 돕느냐'고 비아냥거리기도 했다"며 "그럴 때마다 '소방관들은 나라를 위해, 국민을 위해 목숨을 헌신하는데 80년 넘게 나라에서 혜택을 받은 우리들이 도와주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손 옹은 또한 2011년부터 반곡관설동 장애인 복지시설을 찾아 꾸준히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노인일자리사업으로 알게 된 장애인들이 손자·손녀 같고, 열심히 사는 모습에 감탄해 작은 일손이나마 보태고 있다.

그는 "몸도 불편한데 열심히 사는 모습을 보고 기특해서 종종 간다"며 " 그곳에서 하는 일은 많지 않지만 조금이라도 힘이 되어 주고 싶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