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박경리 선생의 고향과 소설 '토지' 속 배경지를 찿아 떠나는 현장학습은 매년 오월 보리누름께 진행된다. 소설 토지학교의 한 해 교육과정 중 아마 가장 인기 있는 프로그램으로 손꼽힐 것이다.
 

 소설 '토지'의 작가 박경리 선생의 고향인 통영과 소설 속 주요배경지인 하동일대를 두루 찾아다니면서 작가와 작품을 보다 더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어서 더욱 뜻 깊고 보람이 컸다. 특히, 통영시 관계자의 안내로 박경리기념관과 묘소를 직접 참배 할 수 있었고, 훌륭한 해설사의 설명을 들으며 통영시의 역사와 전통문화는 물론, 박경리 선생을 중심으로 통영을 빛낸 '예술인 작품거리'를 돌아보며 시인 김춘수, 청마 유치환, 시조시인 초정 김상옥 등의 동상과 살았던 곳(표지석), 시비에 새겨진 작품들을 통해 시와 문학사랑의 깊이를 더 할 수 있었다.
 

 하동, 그 곳에 가면 마치 우리를 기다리고 반겨줄 최참판과 서희나 길상이 그리고 월선이, 용이 등이 기다리고 있을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섬진강 하동포구에서 잠시 휴식하며 멋진 낙조에 감탄하는 호사를 누렸고, 섬진강 물줄기를 따라 드넓은 평야를 앞마당으로 삼는 지리산 능선의 완만한 자락위에 위치한 최참판댁에 당도하였다.
 

 작가가 1969년 6월부터 집필한 소설 '토지'는 무려 26년에 걸쳐 5부로 완성이 되었다. 그 대장정의 시작 배경이 바로 이 동네라고 생각하니 특별한 감흥에 빠져드는 느낌이다. 마치 오늘이 1897년 추석인 듯하다. 이후 1945년 광복까지의 사건을 이어가는 작품의 주요 배경지가 바로 여기인 것이다. 이 곳에서 주인공과 주변 인물들을 통해 일제강점기 때의 우리나라 상황을 그려낸 것이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그들이 지향하는 바에 따라 어려운 현실과 온갖 고난과 역경을 이겨나가는 가운데 사랑과 애환, 믿음과 불신, 수많은 탐욕과 배신 그리고 복수의 과정을 통해 당시 우리나라의 암울했던 시대적 상황을 그대로 보여준다.
 

 너른 마당에 안채, 사랑채, 별당 등 조선시대 양반가를 그대로 재현한 최참판댁에서 우리는 여정을 풀고 하룻밤을 묵을 수 있는 값진 체험도 했다. 시공간적으로 120여년이 지난 지금, 최참판댁에는 최참판과 서희가 없고 집이 비어있는 관계로 서민들이 모여 사는 초가지붕 주막으로 이동해 저녁을 먹을 수 있었다.
 

 우리 일행은 다시 최참판댁 대청마루에 모였다. 토의를 하기엔 부족한 시간이지만 100분여 동안 박경리 선생의 선양사업에 관하여 조별 토의 시간을 가졌다. 향후 지자체에서 정책적으로 비중을 높여 박경리 선양사업에 적극적인 박차를 가해야 할 것이다.
 

 별당에서 잠을 잤는데 아침에 방문을 열고나오니 신선한 공기가 더없이 상쾌했고, 섬진강을 배경으로 하는 넓은 들판에 엷게 드리워진 박무는 그야말로 영화의 한 장면 이었다. 일출 후 고소산성에 올라 더 높은 곳에서 내려다 본 평사리의 드넓은 뜰은 보리가 누렇게 익어있고, 이미 보리를 수확한 한쪽에선 모내기가 한창이었다. 지리산을 감싸듯 안고 굽어 흐르는 섬진강은 젓줄처럼 여유롭고 넉넉해 보였다. "에헴!" 어디선가 최 참판의 헛기침소리가 들려오는 듯하다.
 

 이렇듯 소설 속 인물의 목소리가 환청으로 들려올 만큼 소설의 배경 속에 푹 빠지는 계기가 된 금번 체험적 문학기행은 박경리 선생의 정신과 작품 세계에 보다 가까이 접근하고 이해 할 수 있었던 뜻 깊은 기회가 되었다.

고성현 (주)MUMS이사  wonjutoday@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