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의 텅 빈 공간. 세월의 흔적이 온전히 느껴지는 콘크리트 건물 안에서 눈을 감고 상상해 봤다. 어떻게 해야 편안할까. 누가 오더라도 몇 시간이고 앉아서 쉬었다 갈 수 있는 곳이 되려면 어떻게 꾸미면 좋을까. 2014년 8월. 그냥 있어도 땀이 흘러내릴 만큼 더운 여름에 강미희(55) 씨는 나무를 자르고 에코스톤을 붙이고 테이블을 만들며 원주 공간 삼무곡 카페 이상한 나라(이하 이상한 나라) 문을 열었다.
 

 강 씨는 아름다운 가게 매장 매니저로 시작해 경인본부장까지 지낼 정도로 커리어우먼으로 승승장구 할 때 이 곳에서 할 수 있는 열정을 다 했다는 생각이 들자 망설임 없이 9년만에 그만뒀다. 이후 대학로에 있는 삼무곡 학교에서 운영하는 공간 삼무곡에서 청소년을 만났다.

 "아이를 있는 그대로 존중하는 교육을 고민하던 중 삼척에 있는 대안학교인 삼무곡 자연예술학교를 알게 됐고 아들을 이곳에 보냈다"는 강 교사는 "'소유하지 않고, 계획하지 않으며 판단하지 않는다'는 삼무(三無)의 지혜를 배운다는 취지가 정말 그대로 실현되는 곳이다"고 설명했다. 특정 종교와 관련 있을 것 같은 곱지 않은 시선도 있지만 전혀 상관없는 곳이다.
 

 대학로 삼무곡에서 청소년을 만나던 어느 날 학교 측에서 원주에 청소년 허브 공간을 만든다는 이야기를 듣고 주저 없이 손을 들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자연과 가까운 곳에서 살고 싶었기 때문이다. 김종운 경희한의원장이 남부시장 뒤 해동아파트 자신의 상가를 무상 임대해줬고 고진하 시인도 적극 도왔다. 이상한 나라는 청소년에게는 찻값을 받지 않고 어른들이 내는 것으로 운영되는 다소 독특한 시스템이다. 처음에는 공짜로 차를 마실 수 있다는 사실에 청소년은 놀랐고 어른들은 자기가 내고 싶은 만큼 찻값을 내는데 낯설어했다. 가장 많이 받은 질문이 "왜요? 정말요? 대박 신기하다"였다.
 

 "자본주의 사회는 늘 거래를 하지만 아무 조건 없이 주는 것도 필요하다. 마음이 움직이는 대로 돈을 내고 청소년은 조건 없이 즐기는 문화만으로도 따뜻했다"고 말하는 강 교사. 작은 카페에서 기타리스트, 가수 등 예술인과 호흡하는 순간을 즐기기 위한 하우스콘서트를 열었고 인문학 강좌도 열었다. 누구나 공간이 필요하다고 하면 주저 없이 이용할 수 있는 덕에 이상한나라에서 벌어지는 새로운 공연과 강의는 마니아층을 만들어냈다. 단체 모임, 총회, 포럼, 북 콘서트 등 매달 새로운 이야기가 펼쳐지는 곳이다. 
 

 청소년도 거리낌 없이 드나드는 공간이 됐다. 말없이 와서 쉬다 가는 청소년도 있고 개인적인 고민부터 가정 어려움까지 툭 터놓고 이야기하는 아이들도 있다. 일명 '죽돌이'도 있었고 고등학교 시절 시간 될 때마다 삼삼오오 몰려와 놀던 아이들이 대학을 들어갔고 주말에 추억 여행을 하듯 이상한나라를 찾기도 한다. "숨 쉴 수 있는 곳이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무엇인가를 채우고 안내하기 보다는 자신을 찾아가는 길을 준비하는 터가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는 강 교사.
 

 숨은 재능도 참 많다. 기회가 됐다면 방송 관련 일을 하고 있을지도 모를 만큼 목소리도 아나운서 못지않게 맑고 노래도 수준급이다. 이상한나라를 하며 기타 봉사 동아리인 코드 다섯과 공연을 다녔고 원주영상미디어센터 원더 풀 라디오에서 팟 캐스트 '사람 풍경' 진행도 2년간 했다.
 

 한 학생과 학부모는 강 교사의 노래를 듣고 진로를 바꾸기도 했으며 가끔은 언니처럼, 엄마처럼 대해주는 따뜻함에 청소년들에게는 또 다른 집 같은 곳이다.
징검다리를 만들어 놓고 아이들이 건너올 수 있는 용기를 북돋아 주는 강 교사. 10년 뒤의 강 교사가 궁금했다. 그녀는 "아마 세월이 흐른 뒤에도 지금처럼 나에게 길을 묻고 있을 것 같다. 다른 이유는 없다. 그게 나다. 그리고 아마 지금보다는 조금 더 자연과 가까운 곳에 있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삼무곡 학교가 최근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어 강 교사도 힘들어졌지만 청소년 옆에서 친구처럼 함께하는 것만큼은 속도를 늦추지 않고 있다. 인터뷰를 마치며 청소년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느냐고 물었다. "청소년은 정말 자기 길 찾아서 열심히 잘 산다. 청소년보다는 부모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 두려워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세상 기준에서 조금 어긋난다고 해도 그 곳에도 길이 있다. 누구보다 그 길을 잘 아는 것은 아이들"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