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술(戊戌)년 새해 발걸음이 세계인의 축제 평창동계올림픽과 더불어 봄날의 꿈을 향해 힘차게 발돋움 한다. 이렇듯 세상은 활기찬 희망으로 향기 가득한데, 눈떠 귀 열면 연일 매스컴에서 쏟아져 나오는 나라 구석구석에서 비일비재 일어나는 살인, 강도, 방화, 화재 등 이웃이 이웃을, 남편이 아내를, 아내가 남편을, 부모가 자식을, 자식이 부모를 죽이는 천륜과 오륜을 저버린 사건사고들…. 아, 어쩌다 무엇 때문에 아름답고 정감 넘치던 우리사회가 이처럼 극단의 막장까지 왔을까 참으로 경악을 금하다 못해 무섭기 그지없다.
 

 다행인 것은 앞으로는 모르지만 지금껏 우리의 고장 원주(原州)에서는 그러한 크나 큰 화재나 사건들이 없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치악산(雉岳: 원래는 단풍이 아름답다하여 적악(赤岳)산) 자락아래 한 아름 둥글게 형성된 마을이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한다.
 

 둥글다는 것은 사랑이다. 사랑은 온유하고 따뜻함이며, 설(說)로 치악산은 여(女)산 주역(周易)으론 음(陰), 물(水) 여성을 의미한다. 이러한 맥락으로 치악산과 원주란 마을은 지리학적으로 어머니가 자식을 두 팔 벌려 둥그렇게 품어 안은 형세로서 사시사철 모든 재앙을 막아주고 있다. 강원감영도 치악산을 마주보고 문을 내었고 그 문을 통하여 감영으로 들어오는 죄인이나 나쁜 생각의 사람들이 실제 온화한 품성으로 교화되었다 한다. 그처럼 치악 여(女)산은 가정을 보살피고 자식을 보듬어 사랑함과 같음이니 어찌 원주란 마을에 재난이 있을 수 있고 저마다 마음마다 인성이 바르지 못해 나쁜 일을 자행할 수 있으랴….
 

 엊그제 일이다. 우체국에서 우편물을 보내며 글 몇 자 적는데 옆에서 우체국 여 직원과 손님이 주고받는 인사말 "손님, 안녕하세요. 원주로 이사 온지 얼마 안 돼 한참을 찾았어요, 우체국 직원, 우스갯말 아, 네 그랬군요 그럼 저에게 얼른 전화를 주시죠 제가 푸떡 알려 줄 터인데… 하하 호호" 바라보진 못했어도 오가는 농이 어찌나 부드럽고 상냥한지… 이내 가슴에 안겼던 그 무엇의 앙금이 사르르 녹아내린다.
 

 그 뿐이랴 이른 새벽 원주천 둔치 어둠을 걷다보면 서로가 얼굴은 확인할 수 없어도 '안녕하세요, 날이 춥지요?' 남녀노소 누가 먼저라기보다 어둠이 훤해지는 인사말들. 관공서나 공공장소나 가는 곳 마다 만나는 이들마다 공손하고 해맑은 미소의 어여쁜 모습들. 언제 아침이 저녁이 되는지, 시간의 흐름에 미움 한 점 보내며 또 내일을 기다리는 환희다. 이처럼 모두와 격 없이 어깨동무 나란히 이야기꽃을 피우며 살아가고 있는 우리의 마을 원주, 나 태어나 몸담고 희로애락의 추억을 만든 곳, 얼마나 소중하고 행복한 전당이랴…. 이 모든 것은 시기질투와 싸움과 성냄이 없는 오직 자혜만 가득한 어머니와 같은 치악산의 맑고 평온한 정기로 이루어진 천(天)의 덕이 아닌가 한다.
 

 오늘도 치악산을 오른다. 아니 매일 쉼 없이 오르는 치악산이다. 그 옛날 삶에 치대어 힘들 때 가시 같은 어머니의 무릎을 베고 다독여 달라고 응얼대며 시름을 달래던 그리움 때문일까? 치악산을 오르면 천만근 지친 몸과 마음이 이내 자취를 감추고 푸름의 날개가 비상한다. 우리의 고장 원주와 나라와 세상 방방곡곡에 평화와 안녕이 무궁하길 간절히 바라며… 누구든 모든 사유에 지쳐 그토록 심신(心身)이 견딜 수 없이 아프다면 훌쩍 일상을 접고 우리의 고장 원주로 오시라, 손에 손잡고 치악산 아늑한 품에 안겨 진실로 건강하고 아름다운 내일의 새하얀 동그라미를 한껏 만들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