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 살다가 원주에 이사 온 지 5년. 여기서 태어난 딸아이도 5살이 되었다. 딸아이는 서울 할머니 댁에 놀러가서도 막국수를 찾는다. 좋아하는 간식도 옥수수나 고구마. 할머니는 손녀가 강원도 아이 다 됐다며 웃고는 하신다. 공기 좋은 곳에서 여유롭게 산다고 서울 친구들은 가끔 나를 부러워했다. 나도 전원과 도심을 함께 품고 있는 원주의 삶이 빡빡한 서울 살이 보다 낫다고 친구들의 서울 탈출을 부추기곤 했다. 정말 그렇게 믿었다.
 

 한 두 해 지나면서 그런 믿음이 깨졌다. 미세먼지가 뉴스에 자주 오르내리면서부터다. 2016년 한 해 동안 초미세먼지 오염도가 심각한 지역 1위가 전북 익산이고, 2위가 강원도 원주라는 기사를 읽었을 때는 강원도가 나를 속였다는 기분까지 들었다. 더 이상 나는 서울 친구들에게 이곳 삶의 질에 대해 자신있게 얘기할 수 없었다.
 

 미세먼지 상태를 알려주는 어플 화면에 미세먼지 '최악, 절대로 나가지 마세요'라는 안내문이 뜨면 섬뜩하기까지 한다. 이런 날, 아이에게 오늘은 밖에 나가지 못하고 집에 있어야 한다고 말해주면 아이는 해맑게 웃으며 하루 종일 엄마랑 집에 있어서 좋단다. '웃프다(웃긴데 슬프다)'는 말이 이럴 때 필요해 보인다.
 

 원주는 왜 이런 오명을 쓰게 됐을까. 서쪽에서 날아온 오염물질이 동쪽 산맥에 막혀 원주에 내려앉았다는 얘기며, 고속도로가 세 개나 지나가서 차량 통행이 많은데 지리적 요인으로 대기가 정체돼 있다 보니 자동차 배출 미세먼지가 원주에 그대로 갇혀있다는 얘기 등을 알게 되었다. 게다가 최근에는 폐기물을 연료로 사용해서 각종 오염물질을 배출한다고 환경단체가 반대하는 SRF 열병합발전소까지 여러 개 가동된다고 하니 머리가 어질어질할 지경이다. 게다가 원주시에서 미세먼지를 줄이기 위해 미온적 대책을 내놓으며 한편으론 미세먼지를 내뿜는 발전소를 함께 짓는다니 아이러니 한 일이 아닌가. 미세먼지 어플에서 친정이 있는 서울 성수동은 '보통', 내가 사는 원주는 '나쁨', 태백산맥 너머 강릉은 '보통'이라고 알려준 날에는 원주를 떠야 하나 심각하게 고민하기도 했다.
 

 원주는 정말 좋은 곳이다. 아파트 놀이터에는 동네 아이들이 모여서 왁자지껄 떠들며 논다. 서울에서는 이미 오래 전에 사라진 풍경이다. 차를 타고 10분만 나가면 텃밭에서 고구마도 쉽게 캘 수 있다. 서울에서는 1년에 한 번 할까 말까한 체험이다. 젊은 부부들이 많아서 그런지 아이들과 함께 갈 수 있는 레스토랑이나 카페도 많다. 소박한 문화행사에 아이들 데리고 가는 재미도 쏠쏠하다. 장일순 선생 같은 분이 활동한 곳이어서 그런지 시민들의 참여 의식 수준도 높다. 그럼에도 한 가지 아쉬운 것은 바깥 공기. 아이들이 건강하게 자랄 환경이 아니라면 다 소용 없는 것 아닌가. 미세먼지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나는 이렇게 외칠지도 모른다.
"나, 돌아갈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