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 넘어 체급 내린 승부수로 전국체전 '금'…드라마 같은 '인간승리'

지난 10월 22일 제98회 전국체전 역도경기가 열린 충북 영동체육관. 여자 일반부 69㎏급 경기가 끝나자 강원도선수단 쪽에서 엄청난 함성이 터져 나왔다. 매년 전국체전에서 종목 종합우승을 도맡아 하는 강원역도가 '금메달' 하나에 흥분하고 감격한 순간이다.

"와 진짜 해냈어" "언니 수고했어요" 등 동료들의 격려와 축하 속에 웃으며 시상대를 내려온 이날의 주인공은 한 사람과 눈이 마주치자 그대로 품으로 달려가 눈물을 왈칵 쏟아냈다. 한 사람은 2017 전국체전 여자 일반부 69㎏급에서 합계 금메달을 목에 건 임지혜(32) 선수, 또 다른 사람은 오늘의 역도선수 임지혜를 있게 한 박미정 원주시청 감독이다.

"시상대에 올라 메달을 받을 때까지는 마냥 좋았어요. 그런데 감독님과 눈이 마주치는 순간 둘이 부둥켜안고 그냥 펑펑 울었어요. 그 짧은 시간 머릿속에 얼마나 많은 일들이 떠올랐는지 몰라요"

그동안 원주시청 유니폼을 입고 획득한 전국체전 메달만 30여개에 이르는 노장 선수의 '금메달'에 모두가 감격한 이유는 말 그대로 '인간승리'를 현장에서 목격했기 때문이다. 그녀는 이번 체전에 기존 75㎏급에서 69㎏급으로 한 체급 낮춰 제2의 도전에 나섰다.

역도를 시작할 때부터 10년 넘게 유지한 체급을 서른을 넘긴 나이에 바꾼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평소 체중을 감안하면 무려 10㎏을 감량해야 하는 무모한 도전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힘을 써야하는 운동인 역도에선 근력이 중요한데, 근육량이 늘수록 체중이 불기 때문에 식단조절뿐 아니라 운동도 마음 놓고 할 수 없다. 어린 선수들 중 올림픽을 목표로 체급을 내리는 경우는 더러 있지만 서른을 넘긴 중량급 선수가 체급을 내리고 금메달까지 목에 건 사례는 찾아보기 어려운 것도 그 때문이다. 경쟁자들까지 그녀에게 아낌없는 환호와 박수를 보내는 이유도 이 같은 사정을 누구보다 잘 아는 동료로서 존경의 표시일 것이다.   

한국 나이로 올해 서른 셋. 직업은 역도선수. 원주시청 역도부를 이끌고 있는 맏언니이자 국내 여자역도 선수 중 최고참인 임지혜 선수의 이력이다. 아직까지 현역으로 활동 중인 또래는 제주도청의 김수경과 충북체육회의 박은진까지 세 명뿐이다. 같은 팀의 막내 함은지와는 무려 띠동갑이다.

2005년부터 13년째 원주시청을 지키고 있는 그녀는 10년 이상 어린 후배들 사이에 '원주시청 조상님'으로 통한다. 2년간 전국대회 성적이 없을 경우 자리를 보전하기 어려운 실업팀에서 10년 이상 한 팀에서 활약한다는 것은 그만큼 꾸준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스스로도 자신의 가장 큰 장점으로 '열심히, 꾸준히, 최선을 다하는 점'을 꼽을 만큼 피눈물 나는 노력이 뒷받침됐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경북 영주와 경산에서 청소년기를 보낸 그녀가 역도와 인연을 맺은 것은 경북체고에 입학한 2001년. 남들보다 한참 늦게 시작한 역도였지만 고교 3학년 때 전국선수권 1위, 전국체전 2위를 차지하면서 가능성을 보였다.

자칫 바벨을 영영 놓을 수 있었던 위기도 있었다. 대학진학과 실업팀 입단을 놓고 고민하다 시기를 놓쳐 1년간 무적선수가 됐기 때문이었다.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며 방황하던 그녀에게 기회를 준 곳이 원주시청. 그녀의 성실함을 눈여겨 본 이정희 현 치악중 코치의 추천으로 둥지를 튼 원주는 역도선수 임지혜에게 구원의 땅이자 기회의 땅이 됐다. 특히 박미정 현 원주시청 감독과 찰떡호흡을 자랑하며 꾸준히 기량을 향상시켰다.

'대기만성형'이라는 주위의 평가에 걸맞게 20대 중반 이후 임지혜의 활약은 눈부셨다. 2009년 전국체전 2관왕과 아시아역도선수권 3위를 차지하고 2010년 전국선수권에서 3관왕에 오르며 체급 국내 최강자로 군림했다. 장미란, 윤진희 등 쟁쟁한 선후배들에게 가려있었지만 2009년부터 4년간 태극마크를 달고 세계선수권, 올림픽, 아시안게임 등에 출전하며 한국 역도를 대표했다.

역도 선수로서 제2의 전성기를 활짝 연 임지혜의 다음 목표는 2019년 제100회 전국체전 출전이다. 무적선수로 지낸 1년을 제외하고 81회 대회부터 16번이나 참가한 전국체전은 역도선수 임지혜를 세상에 알린 무대이면서 승리와 패배, 환희와 낙담, 도전과 재기 등 선수생활의 모든 추억이 남아있는 곳이기도 하다. 

"솔직히 밥벌이로 시작했지만 역도선수로 최고의 자리에도 올랐고 성취감, 희열, 자존감 등 역도를 하지 않았으면 몰랐을 많은 경험을 했다"는 그녀는 "힘들지 않은 날이 하루도 없었지만 역도가 없었다면 지금의 임지혜가 없고, 때문에 단 한번도 역도를 시작한 것을 후회해 본 적이 없다"면서 "선수생활을 마치는 날까지 다치지 않고 유종의 미를 거두고 싶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