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말 '제천의병' 축제가 한창인 도시에 갔다. 122주년을 기념한 행사 가운데 학술세미나 토론 과정에서 의병의 정체성과 역사적 의미를 담은 용어 사용에 대한 논쟁이 있었다. 양 갈래 논쟁 중 하나는 제천의병, 원주의병, 춘천의병, 지평의병 등 지역의 명칭을 중요시하고, 또 의병전쟁 과정에서 본진의 역할을 수행했던 제천지역의 역사성을 중요시하는 향토사학자의 의견이다.
 

 다른 한 켠에서는 유인석을 비롯한 의병으로 활동했던 인물들이 다만 한 곳에 머물지 않았던 역사적 사실, 그리고 의병의 조직과 활동에서 다양한 세력이 등장하는 내용, 당시 조선이 처한 국가적 위기를 넘어서고자 했던 과정 등을 짚어내고자 했다.
 

 나의 '마음의 소리'에서 두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원주도 의병전쟁에서 빠질 수 없는 곳인데 우리는 지역명, 시기, 인물 등의 기준을 어떻게 적용하거나 합의하고 있던가' 하는 물음, 그리고 앞선 두 가지 의견은 명확한 결론을 요구하는 쟁점 사안이 아니라 '의병'에 대한 상보적 이해가 가능한 논제일 따름이라는 생각이었다.
학술적으로는 때를 기준하여 을미의병(1895), 을사의병(1905), 정미의병(1907)으로 명명하고 있는 한편, 의병전쟁에 참여한 그들 자신은 호좌의진(湖左義陣), 관동의병(關東義兵), 원주진위대(原州鎭衛隊) 등으로 불렀고, 현재의 우리들은 각 지역 또는 중요시하는 인물의 명칭을 붙여 호명하고 있었다.
 

 역사적 사실, 그리고 그 속에 빠짐없이 존재해왔던 인물은 현재 우리의 정체성을 이루는 근간이 된다. 학문 또는 연구의 영역에서는 철저한 객관성과 정합성을 견지하면서 종합적인 시각을 아우를 수 있는 논리와 이론을 도출해내기 위한 체계화와 방법론을 추구하는데, 여기에는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의 고유한 역사성에 대한 이해나 연구 대상지로서의 범주 설정이 충분히 고려되지 않기 쉽다. 또한 지역에서 오랫동안 살아온 사람들이 독특하게 공유하거나 이해하고 있는 자기 터전의 역사와 문화, 지역 정서와 사정을 깊이 헤아리는 것은 아주 조심스럽게 접근해야할 부분이기도 하다.
 

 이러한 이해 아래 역사학 분야에서는 1990년대부터 지방사(지역사) 연구의 필요성과 중요성에 대한 활발한 움직임이 일어났고, 원주에서는 '원주학' 연구를 시작으로 원주의 역사와 인물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가 진행되었다.
전국 각 지역에서 인물 선양을 위한 사업을 지금도 활발히 전개하고 있는 가운데 원주에서는 올해 4월 운곡 원천석 선생제를 묘역에서 봉행하였고, 11월에는 학술대회가 열렸다. '강원의 얼 선양을 위한 원주의 얼과 인물 연구'가 어느덧 일곱 번째 성과로 남겨지는 가운데 새삼 운곡 선생님을 포함한 원주의 인물에 대한 총체적인 그림이 궁금해졌다.
 

 비록 동의할 수 없다고 누군가 질책하더라도 원주는 역사 속 인물이 너무나 많은 곳이라고 생각한다. '선양'의 기준을 어떻게 설정하느냐에 따라 '원주사람', 혹은 '원주인물'의 범주는 천차만별이 되겠지만, 만일 과거의 역사 사료에서 확인되는 인물이라는 전제 아래 '원주에 태어났거나, 묻혔거나, 최소 1년 이상 활동했던 사람'이라고 생각한다면 천여 명 내외의 인물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그 가운데 시기를 나누고, 학문과 학맥, 사상의 범주로 묶고, 실제 활동한 내용을 살펴보는 등 일련의 분류기준 설정 및 행적에 대한 추적·정리의 과정을 진행해보면 어떨까. 현재 원주 사람들의 역사와 정체성의 근간이 된 과거 사람들의 정신사적 흐름과 표면적으로나마 풍부해 보일 수 있는 스케치가 초벌구이 형태로 드러나지 않을까 생각한다.
 

 최근 원주문화원에서 발간한 자료로 강원도관찰사에 대한 연구(박문성著)에서는 원주감영에 실제 부임한 관찰사를 525명으로 정리하였다. 물론 최소 3일(박강 朴薑) 또는 최대 3년 8개월(정태호 鄭泰好)이라는 재임기간에 따라 실제 원주지역에서 어느 정도의 공적 활동을 했는지, 무엇을 남겼는지에 대해서는 더욱 폭넓은 조사와 연구가 필요하리라 생각된다.
 

 원주와 관련한 근대시기 의병의 역사, 조선시대 감영의 역사, 운곡 선생님을 비롯한 중세시대의 인물들에 대한 그간의 연구 성과와 내용들이 만일 '역사 속 원주인물(지식인) 지형도'와 같은 그림에 여러 폭으로 담긴다면 어떨까. 원주에서 태어나 성장하고 있는 아이들에게 뿌듯한 마음으로 보여줄 수 있는, 굳이 세계 곳곳을 누비지 않더라도 내가 태어난 곳에서 인생의 멘토를 찾아보게 해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이진형 연세대학교 연구원  wonjutoday@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