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이 마을에는 해삼이라는 덕망이 높고 인품이 훌륭한 큰 부자가 살았는데 그의 집에는 항상 손님이 끊이지 않았다. 끝도 없이 찾아오는 손님은 해삼의 아내에게는 큰 고통이었다. 어느 날 스님이 시주를 받기위해 해삼의 집을 찾았다. 해삼의 안주인은 시주는 넉넉히 할 테니 우리 집에 제발 손님이 오지 않도록 하는 방법을 알려달라고 했다. 잠시 머뭇거리던 스님은 집 앞의 고갯길을 끊으면 손님도 자연 끊어질 것이라고 비법을 말해주었다.

 그날 저녁 해삼의 아내는 하인들을 시켜 집 앞 고갯길을 끊었는데 붉은 피가 솟아올랐다. 신기하게도 그 이튿날부터 그 많던 손님들의 발길이 뚝 끊겼다. 해삼의 아내는 무척 기뻐했으나 그 기쁨도 잠시, 점점 가세가 기울더니 1년도 못되어 집안이 망했다. 죄책감에 시달린 해삼의 아내는 집 앞 작은 연못에 투신 자살하였다.
 

 해삼터 전설에는 전설이라면 꼭 갖추어야할 공식이 모두 들어있다. 스토리의 기승전결이 명확하고 신비함, 교훈 등을 두루 갖추었다. 마을에 부자가 살았는데 그의 인품이 훌륭하여 많은 사람들이 찾아왔다. 아내가 불만을 가졌고, 이때 어김없이 등장하는 해결사, 고명한 스님이 비법을 알려주고 길을 끊으니 신비스럽게도 붉은 피가 솟아올라 불안한 결말을 예고하고 결국 해삼의 가문은 몰락하였다는 스토리 전개이다. 자고로 집안에는 손님이 찾아와야 집안이 번성하니 오는 손님 잘 대접해야한다는 이야기의 교훈도 명확하다.
 

 주관적이지만 전설 속 해삼을 오늘의 시각으로 재해석해봤다. 첫 번째는 시대적 관점에서 바라본 상상이다. 매일 손님이 끊이지 않았던 해삼이 망했다는 것은 7세기 백제 패망과 함께 지역의 유력 권력자의 신분에서 몰락한건 아니었을까? 만약 그렇다면 해삼은 1천400년 전 7세기 무렵 우리 지역의 유력 지배계급이었을 것이다. 우리마을은 일제 강점기 금물산면(현 흥업면) 본1리 였으며 지명에서 알 수 있듯이 현재의 대안2리는 당시 지역의 중심지였다
 

 두 번째, 그가 나눔을 실천한 사회사업가였다는 생각이다. 해삼의 아내는 매일 찾아오는 수많은 손님에게 음식을 내놓아야 했다. 그녀는 그게 싫어서 고갯길을 끊은 것이다. 불과 60여년 전에도 우리 마을의 백승현(74세)씨 조부(고 백남식, 1951년 졸)께서도 해삼과 같이 나눔을 실천하셨던 분이었다고 한다. 어스름 저녁이 되면 길가던 나그네들이 꾸역꾸역 사랑방에 모여들었고 그들에게 아낌없이 숙식을 제공하였으며 언제나 찾아오는 사람들로 붐볐다고 동네 어르신들은 증언한다. 불과 반세기 전, 우리의 전통사회에서 음식을 나눈다는 것은 꼭 접대뿐만이 아니라, 부의 재분배를 의미하기도 했으며 가진자의 덕목이기도 했다.
 

 세 번째, 그의 인품에 관한 생각이다. 해삼의 집에 손님이 끊이지 않았다는 것은 그의 덕망이 높고 인품이 훌륭하며 다른 이와의 소통에 능했다는 것이다. 소통은 내가 이야기하는 것 보다는 남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이다. 만약 해삼이 찾아오는 손님들에게 내 이야기만 했다면 누가 해삼의 집을 찾았겠는가? 소통은 나 아닌 다른 사람을 존경한다는 말의 다른 말이다.
 

 해삼은 덕망이 높아 존경받는 마을의 권력자이며 소통의 달인이고 동시에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했던 훌륭한 지도자였다고 생각한다. 해삼터 전설의 교훈인 소통과 나눔은 이 시대에도 더없이 소중한 가치이다.
 

 2년 전부터, 우리마을에서는 해삼의 아내가 끊었던 고갯길 부근에서 해삼의 덕을 기리며 그의 넋을 위로하고, 아울러 마을공동체의 안녕과 평화, 주민과 출향민의 건강과 행복을 기원하는 소박하고 단촐한 해삼제를 지내게 되었다. 다행이 올해 강원도가 주관하는 '2017년도 주민모임활성화사업'에 우리 마을의 해삼제가 선정되었다. 적은 규모의 지원이지만 해삼제의 지속적인 개최와 발전에 큰 힘이 되리라고 믿는다.

이규범 흥업면 대안2리 해삼터마을회 총무  wonjutoday@hanmail.net